보이스피싱… 日 노인•韓 청년 주로 낚인다


한국과 일본은 함께 늙고 있다. 한국은 지난해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가 넘는 고령사회로 접어들었다. 일본은 2006년에 이미 초고령사회(고령화율 21%)가 됐다. 빠른 속도로 고령화를 겪고 있지만 이에 따른 사회현상은 차이가 난다.

일본에선 노인을 대상으로 한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이 활개를 치면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반면 한국의 노인들은 보이스피싱에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대신 젊은 여성을 노리는 보이스피싱이 기승이다.

일본 경찰청에 따르면 고령자 대상 보이스피싱은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 연속 증가했다. 6년간 누적 피해액은 406억엔(약 4005억원)에 이른다. 가족인 것처럼 속이고 전화를 걸어 돈을 보내라고 하는 ‘오레 오레(나야 나) 사기’가 대표적이다.

노인을 표적으로 하는 보이스피싱이 심각하자 일본 금융권은 고령자 이용한도 축소에 나서고 있다. 일본 미쓰비시UFJ신탁은행은 7월 30일부터 80세 이상 고령자의 현금입출금기(ATM) 이용을 제한한다. 최근 1년 안에 현금카드를 이용해 출금한 기록이 없는 고객의 1일 이용한도를 낮추는 것이다.

원하지 않는다면 이용한도를 유지하겠다고 별도로 신청해야 한다. 금융회사 86곳에서 비슷한 방안을 도입했거나 검토 중이다. 같은 길을 걷고 있는 한국은 어떨까. 금융 당국이나 시중은행은 현재까지 고령자의 입출금이나 ATM 사용한도 등을 제한할 계획이 전혀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에선 고령자라는 이유로 보이스피싱에 취약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일보가 경찰청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받은 보이스피싱 발생 통계를 보면 지난해 피해자 2만1594명 중 70대 이상은 112명에 그쳤다. 올해도 비슷하다. 올 들어 지난달까지 보이스피싱 피해자 4502명 가운데 70대 이상은 101명이다.

한국의 보이스피싱 피해자는 뚜렷하게 구분된다. 금융회사를 사칭해 ‘저리(低利) 대출로 갈아타는 데 필요하다’며 먼저 입금할 것을 요구하는 ‘대출사기형 보이스피싱’의 주된 먹잇감은 중년 남성이다. 실제 대출 상담과 엇비슷하기 때문에 대출을 많이 받은 가장이 주로 당하는 것이다. 올 들어 지난달까지 대출사기형 보이스피싱에 당한 40, 50대 남성은 864명이나 된다. 전체 대출사기형 보이스피싱 피해자(2372명)의 36%를 차지할 정도다.

검찰•경찰•금융감독원을 사칭해 대포통장이나 금융사기에 연루됐다고 속이는 ‘기관사칭형’에는 젊은 여성이 취약하다. 올해 1월부터 지난달까지 기관사칭형에 당한 20대 이하 여성은 1122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기관사칭형 피해자(2130명)의 절반이 넘는다.

한국과 일본의 보이스피싱 피해자 연령대가 다른 데에는 사회 분위기, 경제 상황 등이 반영돼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금융이 낯선 사회초년생이나 대출 부담을 걱정하는 중년 남성 등 현실 문제와 관련된 이들이 보이스피싱에 취약한 흐름을 보인다”고 말했다. 일본 노인은 한국 노인에 비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 한국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45.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한편 금감원이 공개한 보이스피싱 단계별 사기수법에 따르면 보이스피싱은 주로 피해자에게 접근해 ①심리적 압박 ②주변 도움 차단 ③피해자 안심시키며 계좌 현황 파악 ④돈 갈취 식으로 진행된다. 금감원 관계자는 “대출빙자형 사기는 정상적 대출상담과 구별이 어렵기 때문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석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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