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지적 상처


사람은 누구나 호기심과 궁금증을 갖고 있다. 그 중에 가장 궁금한 것은 우주와 생명의 기원에 관한 것이다. 생명체는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을까, 지구와 우주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 졌을까, 창조인가 진화인가?

과학자들은 이런 기원에 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하여 많은 연구를 하고 있지만, 문제는 과학은 기원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기원에 관한 문제는 과학적에서 가장 중요한 관찰과 실험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원에 관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가정과 이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크게 창조론과 진화론으로 나눌 수 있다.

창조론은 전지전능하신 창조주가 있다는 전제하에 그 분의 지혜와 설계에 의하여 천지만물이 6일 동안에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반면에 진화론은 창조주는 존재하지 않으며,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우연히 발생하여 오랜 시간(지구는 45억년, 우주는 137억년) 동안에 진화과정을 거쳐서 지구와 우주와 생명체가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둘 다 관찰과 실험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과학으로 다룰 수 있는 범위를 벗어 난 것이다. 따라서 창조론 대 진화론은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 또는 세계관의 문제로 보는 게 타당하다.

영적으로는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 유무에 관한 영적전쟁으로서 신앙과 신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신앙은 창조주에 대한 체험과 은혜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인격적인 믿음이지만, 신념은 이성과 지식만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맹목적인 믿음이 된다.

인격적인 믿음은 은혜와 생명을 낳지만, 맹목적인 신념은 상처와 죽음을 낳는다. 진화론은 맹목적인 신념으로서 인격적인 하나님을 배제하기 때문에 인류 역사상 많은 상처와 죽음을 남겼다. 그 상처는 공교육 시간에 배우는, 진화론이라는 잘못된 과학적 지식이 만들어 낸 결과이기 때문에 필자는 이를 ‘지적 상처’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안타까운 사실은 모두가 과학시간에 배우는 진화론을 통해 지적상처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지적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다는 점이다. 상처를 입었음을 알게 되면 치유하려고 하지만, 상처 입은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치유하려고 하지 않는다.

21세기는 첨단 과학시대이며, 반도체기술과 통신기술의 발달로 지식과 정보가 빛의 속도로 왕래하고 있는 시대이다. 지식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홍수가 나면 먹을 물이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현재 지식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지만, 창조주 하나님을 믿게 하고,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지식과 정보는 거의 없다. 오히려 하나님이 없다 하고, 하나님이 틀렸으며, 기독교 신앙은 비과학적이라고 조롱하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여 교회를 떠나게 하는 지식과 정보들로 넘쳐나고 있다.

안타까운 사실은 우리의 자녀들이 넘쳐나는 지식과 정보들에 대한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분별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잘못된 지식을 학교 교육을 통해서 배웠고,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잘못된 지식으로 입은 지적상처는 이성을 마비시키며, 마비된 이성은 신념이라는 방호벽을 쌓아서 참된 지식이 들어 올 수 없도록 막는다. 1859년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함으로써 시작된 진화론은 현재 전 세계에서 공교육을 통해 가르쳐 지고 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어릴 때부터 공교육을 통해서 진화론을 배우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지적상처를 입은 피해자들이다. 지적상처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으로만 치유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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