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서 보던 1600년 전 방패 실제로 나왔다


고구려 고분 벽화 중 가장 규모가 큰 안악 3호분(357년 제작 추정)의 ‘행렬도’에는 방패를 든 사람들이 나온다. 손잡이가 없어 옆구리에 끼고 걷는 이들도 등장한다. 이처럼 그림으로만 알 수 있었던 1600년 전 삼국시대에 제작된 방패의 존재가 온전히 실물을 파악할 수 있는 형태로 처음 확인이 됐다.

문화재청 산하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추진한 경주 월성(사적 제16호) 발굴조사 결과, 해자 내부에서 4~5세기에 제작된 방패 2점과 의례에 사용된 가장 오래된 목제 배 모형1점 등이 나왔다고 발표했다.

신라 도성인 월성에서 나온 방패는 하나는 손잡이가 있고, 하나는 없는 형태다. 손잡이가 있는 형태의 발견은 국내 최초이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최문정 학예사는 “손잡이가 없는 방패는 경북 경산 임당 저습지에서 5세기에 제작된 3점이 확인된 바 있다. 그러나 부식된 편(조각)으로만 출토돼 삼국시대 방패의 형태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벽화에 나온 방패 종류가 모두 실물로 확인된 것도 큰 성과”라고 강조했다.

방패 크기는 각각 14.4×73㎝와 26.3×95.9㎝이며 표면엔 기하학적 밑그림이 그려져 있다. 방어용 무기로 썼거나, 의장용으로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4~5세기 초 제작된 국내 최고(最古)의 목재 축소 모형(미니어처) 배도 출토됐다. 길이가 약 40㎝로 작아 의례용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실제 배와 같이 뱃머리와 배꼬리가 분명하게 표현된 준구조선의 형태였다.

준구조선은 통나무배에서 구조선으로 발전하는 중간 단계의 선박인데, 이런 유형의 축소 모형 배는 일본에서 500여점이 출토된 바 있다. 월성의 모형 배는 일본의 시즈오카현 야마노하나 유적에서 출토된 5세기의 모형 배와 유사하다. 동아시아가 이 시기에 준구조선 제작 기술을 공유했던 것으로 보인다.

목간 1점도 나왔는데, 여기엔 소규모 부대 지휘관 또는 군(郡)을 다스리는 지방관 명칭인 당주(幢主)와 곡물 이름이 언급돼 있다. 6세기 금석문에 나오는 당주가 목간에 등장하기는 처음이다. 벼 조 피 콩 등의 곡물이 등장하고, 그 수량을 일(一), 삼(三) 등이 아닌 일(壹), 삼(參)으로 표현한 점도 눈길을 끈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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